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마노스 3세 (문단 편집) === 강요에 의한 제위 === 1028년, 콘스탄티노스 8세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후계자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. 콘스탄티노스는 자신의 딸 [[조이(로마)|조이]]와 결혼하는 이를 황제의 자리에 올리기로 했다. 당초 그는 콘스탄티노스 달라세노스를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. 콘스탄티노스는 사자를 보내 그를 급히 콘스탄티노플로 소환하려 했다.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수도의 관료들은 아나톨리아 귀족이 다시 득세하기를 바라지 않아서 거세게 항의했다. 콘스탄티노스는 이 반발에 버티지 못하고 즉각 또 한 명의 사자를 파견해 수도로 오고 있던 달라세노스에게 더 이상 올 필요가 없다는 전갈을 전했다. 한편 관료들은 고등 법원의 최고 판사, [[하기아 소피아]]의 관리자, [[콘스탄티노폴리스|수도]]의 행정 장관을 맡고 있는 원로원 의원인 로마노스가 여러 모로 황제의 적임자로 평가하고 후보로 추천했다. 당시 로마노스는 아내와 결혼한 지 오래였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고 있는 육순의 노인이었으나 후보로 추천된 이상 그런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. 콘스탄티노스 8세는 로마노스와 그의 부인을 체포해 자신 앞에 끌고 오게 했다. 여기서 로마노스는 [[이지선다|두 가지 선택 사항]]을 듣게 된다. 당장 지금의 부인과 이혼하고 딸인 계승권자 [[조이(로마)|조이]]와 결혼하여 부제를 거쳐서 단독 황제의 자리에 오르거나, 아니면 [[실명|두 눈을 뽑히는]] 동로마 제국의 유서 깊은 형벌을 받던가.[* 사실 이전에도 [[테오도라(11세기)|테오도라]]와 결혼 얘기가 나왔었지만, [[근친혼|먼 친척이라는 이유로]] 고사했었다.] 우리 나라로 따지면 6촌 형님[* [[로마노스 1세]] 레카피노스의 딸의 아들의 아들이 [[바실리오스 2세]]와 [[콘스탄티노스 8세]] 형제이며, 또 다른 딸은 아르이로스 가로 시집갔고, 그렇게 낳은 아들의 아들이 로마노스 3세다.] 되는 콘스탄티노스가 죽기 직전이라 이렇게 이지선다를 건 것이다. 로마노스는 아내를 사랑했기에 이 사안에 깊은 고민에 빠졌으나 마찬가지로 [[조강지처|남편을 사랑했던 아내는]] 망설임 없이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울면서 자신의 머리를 자르고는 [[수도원]]으로 들어가버린다. 결국 11월 10일에 조이와 결혼한 로마노스는 그 다음날에 자신의 장인인 콘스탄티노스의 임종을 지켜보았고, 15일에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